파비우스의 승리

파비우스의 승리


로마와 그리스의 전쟁을 통해서 나온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피로스의 승리(PHYRRIC VICTORY)"라는 용어이지요. 이는 승자의 저주와 유사한 개념으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불리하게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겼지만, 그 승리를 취하기 위해서 투입한 손실이 너무 큰 경우를 가리키는데요. 그래서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닌 경우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피로스의 승리와는 반대되는 개념의 파비우스의 승리"


이러한 피로스의 승리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을 가진 용어가 있기도 합니다. 바로 "파비우스의 승리"라는 개념인데요. 이는 "싸우지 않고 승리를 거두거나, 혹은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이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개념은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이었던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QUINTOS FABIUS MAXIMUS)"의 이름에서 나온 개념인데요.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나온 용어이기도 합니다.


△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장군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의 거센 공격을 받은 로마"


기원전 217년, 알프스 산맥을 넘어온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 바르카(HANNIBAL BARCA)에 의해 로마는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초기, 로마는 트레비아 전투와 트라시메노 호수 전투에서 한니발 장군의 병력에 대패를 당하게 된 것이지요. 두 전투의 큰 패배로 인해서 로마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결국, 로마 원로원은 비상사태를 선포, 독재관에 퀸투스 파비우스 장군을 임명하게 되지요.




"파비우스 장군이 사용한 전략은 지연전"


이러한 위기상황 속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한 파비우스는 한니발의 군대를 상대로 지연전을 펼칩니다. 한니발의 본대와는 무조건적인 전투를 피하는 대신, 한니발 군의 식량 징발대를 차단하거나, 약한 부대를 공략하는 정도로 소극적으로 전쟁에 임합니다.


한니발 군대를 상대로 이렇게 지연전을 펼친 이유는 간단했는데요. 한니발 군은 계속되는 승리로 인해서, 사기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고, 그에 반해서 로마군은 패배를 계속해서 사기가 떨어져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는 결국, 시간을 끌면서 한니발의 군대가 스스로 지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로마에서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정정당당한 싸움을 하고 전쟁에서 후퇴는 치욕이라고 여겼던 당시의 로마 기풍 아래에서 이러한 전술은 비겁하게 보였을 뿐이지요. 그리고, 한니발이 계속해서 이탈리아의 내부를 휘젓고 다녔기에 로마의 경제적인 피해가 쌓이는 상황에서 그의 군대를 저지하지 않으니, 결국 그는 경질당하고 말았습니다.




"파비우스의 지연전에 불만을 품은 강경파와 칸나이 전투, 그리고 패배"


파비우스의 지연전에 불만을 품었던 강경파가 정권을 잡고, 그들은 바로 한니발과의 결전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원전 216년 칸나이 전투가 발생하는데요. 여기에서 로마는 한니발의 군대에 대패하며 약 7만 명의 군사를 한 번에 잃고 맙니다. 다시 로마에 계속되는 위기가 닥치는 상황에서 다시 "파비우스" 장군이 집정관으로 등판하고, 한니발을 상대로 지연전을 펼칩니다.


이후, 한니발 군대를 상대로 계속해서 지연전을 벌이고 전면전을 피했던 로마군은 방어를 계속하다, 한니발의 후방을 공격하게 합니다. 그리고 순서대로 기원전 211년, 로마를 배신하고 한니발에게 붙은 카푸아를 함락시켰고, 기원전 209년에는 타렌툼도 수복했지요. 기원전 207년에는 하스드루발의 지원군이 메타우루스 전투에서 전멸하며, 한니발은 루카니아 지방을 버리고 브루티움으로 철수합니다.


기원전 204년 로마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보내서 한니발의 근거지인 에스파냐를 점령하고, 카르타고의 본토인 북 아프리카를 침공하게 되는데요. 결국 이로 인해서 한니발 군은 기원전 203년 이탈리아에서 철수하게 되고, 202년 자마 전투에서 승리해서 카르타고를 점령 직전까지 몰아서 휴전을 맺었다고 합니다.


결국 "파비우스"의 지연 전략이 통했고, 풍전등화 속의 로마를 구해내고, 한니발을 몰아내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서 그는 이후 "로마의 방패"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받았으며, 동시에 "로마의 검"이라고 불리는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와 함께 로마의 위대한 장군으로 칭송받게 되었습니다.




"파비우스의 승리 =  싸우지 않고 승리를 거두거나,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끝끝내 이기는 것"


이러한 전투의 결과로 인해서 "싸우지 않고 승리를 거두거나,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끝끝내 이기는 것을 두고 "파비우스의 승리"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하지요. 여기까지, "파비우스의 승리"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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