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정족산성 전등사"

강화도 "정족산성 전등사"


강화도 "정족산성 전등사"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강화도의 중심에는 불교 사찰이 있습니다. 바로 전등사라는 곳인데요. 이 곳은 정족산성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불교 사찰입니다. 전등사에는 대웅전, 약사전, 범종 등의 대한민국 보물이 소장되어 있기도 하고, 경내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 사고가 있기도 합니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전등사"


전등사는 고구려 시대에 세워진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조금씩 바뀌어왔는데요. 전등사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고려 후기인 충렬왕 때라고 합니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81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사찰 중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사찰이라고 하지요. 아도화상이 처음으로 이 절을 지을 때는 "진종사"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광해군 때 화재로 소실되었던 전등사"


고려시대에 전등사는 고려 왕실에서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중수가 이루어졌으나, 조선시대 광해군 대에 이르러 화재로 소실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1621년에 다시 재건되게 된답니다. 이후, 병자호란의 발발로 인해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마니산 사고가 훼손되었는데요. 이로 인해서 1660년에 전등사 경내에 정족산 사고를 설치하고 실록을 보관하게 되었다고 하지요.


그로 인해서 전등사 안에 있는 정족산 사고는 적상산, 오대산, 태백산과 함께 조선 후기의 실록 보관소가 되었습니다.



△ 정족산성, 삼랑성 성문




"병인양요로 인해서 피해를 보기도 했던 전등사"


전등사는 1866년 병인양요로 인해서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으로부터 불상과 법전 등의 문화재를 약탈당하기도 한 것이지요. 그리고 당시 전등사가 있던 자리가 조선 관군과 프랑스군의 교전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웅전 안에는 낙서처럼 보이는 묵서들이 곳곳에 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글씨 하나하나가 병인양요 당시 참전했던 병사들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프랑스군과의 교전을 앞두고 전쟁에서 이기고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기를 빌면서 병사들이 대웅전 불단과 기둥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은 것이라고 하지요.






"보물 178호로 지정되어 있는 전등사"


전등사는 보물 17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약사전은 보물 179호, 범종은 보물 393호 등으로 지정되어 있는 국가문화재이기도 합니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절인지라, 이 곳에는 다양한 전설과 설화, 민담들이 있기도 합니다. 전등사 대웅전의 지붕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답니다.






"전등사의 지붕에 얽힌 전설"


전등사 대웅전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목각상을 벌거벗은 여인인 "나부상"이라고 하는데요. 여기에는 대웅전 중수를 맡은 도편수가 달아난 여인에 대한 배반감으로 조각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 목각상이 원숭이라는 주장이 잇기도 한데요. 이러한 주장은 한글대장경인 "육도집경"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전생에 석가모니는 원숭이 500마리를 거느린 원숭이 왕이었는데, 무리를 안전하게 지키고자 자신을 희생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에서 착안하여 원숭이들의 석가모니에 대한 끝없는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네 마리의 원숭이들이 처마를 받들어 지붕을 들고 있게 했다는 설이지요.





"전등사에 있는 범종은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다?"


전등사에는 범종이 있습니다. 이 범종은 보물 제393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요. 이 종은 북송시대의 종으로 높이 1.64m, 입지름 1m로 꼭대기에는 좌우에서 쌍룡이 등을 지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의 꼭지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원래 중국 송나라 때 허난성 백암산 숭명사에 있던 것으로 1097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데요. 일제 강점기 때에 일본 군인들이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쇠붙이를 거두어 들일 때 전등사 범종도 강제로 빼앗아갔습니다. 광복 이후, 부평 군기창에서 큰 종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전등사 범종이 아니라, 송나라 때 만든 종이었으며, 이 종을 전등사에 가져다가 달아놓은 것이라고 하지요.



"은행나무 설화가 깃들어 있기도 한 전등사"


또한 전등사에는 은행나무 설화가 있기도 합니다.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는데요. 숭유억불 정책을 펼치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내용이랍니다.


때는 숭유억불 정책을 펼치던 조선시대, 전등사도 예외 없이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관리들과 토호들의 토색질이 심해서 젊은 스님들은 강화성을 쌓는 데 사역을 나가고, 늙은 스님들은 종이를 만들어 바쳐야 했다. 거기에 더해 전등사에 있는 2그루 은행나무로 인해 매년 조정에 은행알을 바쳐야 했는데, 그마저도 싹 다 털어 진상으로 바치고 나면 남는 게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스님들은 이것 또한 수행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관가에서 "조정에 진상할 전등사 은행알의 양을 크게 늘리겠다"며 20 가마니를 요구했다. 안 그래도 은행알을 있는 대로 다 털어도 10 가마니밖에 안 될 판에 20 가마니를 바치라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 많은 은행알을 구해서 바칠 수 있을지 막막해서 전등사 안은 난리가 났다. 조정에 상소를 올려도 씨도 안 먹힐 게 뻔하고, 그렇다고 탁발해서 모자란 양을 보충하자니 "좋은 은행은 승려들이 다 먹고 탁발한 은행들만 진상했다"라고 트집 잡힐 게 뻔하니, 이래저래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고심 끝에 신통력이 있는 백련사의 추송 스님을 불러와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다.


추송 스님이 전등사에 도착하자, 전등사 승려들은 은행나무 아래에 단을 쌓아두고 3일 기도를 올릴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드디어 3일 기도가 시작되었는데, 전등사 안은 소문을 듣고 구경을 하러 온 강화도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어느샌가 관속 몇 명이 소문을 듣고 나타나서 구경꾼들의 틈에 끼다가, 그중 한 사람이 "설마 공물 셔틀 하기 싫다고 저주 퍼붓는 거 아니냐"라고 노스님에게 시비를 걸었다. 스님은 "어허, 어찌 그런 무엄한 말을! 상감께 진상할 은행이 곱절로 열리게 기도하는 것이오."하고 답했는데 그 관속이 비웃으며 "하하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다고 은행이 더 열릴 것 같은가? 참 웃기는군 하하하" 하자마자 갑자기 "악" 소리를 내면서 얼굴을 감싸 쥐고 땅바닥에 나자빠졌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니, 그는 한쪽 눈이 팅팅 뿔어 실명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 소문이 퍼지자 구경꾼이 더 모여들었다.


드디어 마지막 3일째, 기도가 거의 끝나자 목탁과 바라 소리가 일제히 멈추고 염불 소리도 멎어 전등사에 적막이 흘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추송선사가 은행나무를 향해 "오늘 3일 기도를 마치며 이 은행나무 2그루가 100년이 지나도 1000년이 지나도 영원히 열매 단 한 알도 맺지 아니하기를 축원하나이다."라고 낭랑한 목소리로 기도를 끝맺었다. 이를 듣고 있던 승려들과 구경꾼들은 "어 이거 뭐지? 은행을 곱절로 열리게 하는 거 아니었나?"라고 어리둥절해하는데 별안간 하늘이 어두워지고 요란한 천둥번개와 함께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며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우수수 떨어졌다. 시간이 지나 비바람이 그치고 하늘이 개자 은행나무 쪽을 보니 추송 선사와 노승(老僧), 동승(童僧)은 온데간데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 날 이후 은행나무 2그루는 은행을 맺지 않게 되었고 관가의 탄압도 없어졌다. 하긴 진상으로 바칠 은행알이 아예 한 알도 안 열리게 되어버려서 먹고 죽을래도 없는 상황이니. 그리고 오늘날도 은행을 맺지 않고 있는 은행나무들은 노승 나무와 동승 나무로 불린다.




△ 강화의병 전투지와 맞닿아 있는 전등사




"2천 원의 주차비와 3천 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는 전등사"


전등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 하기도 합니다. 전등사 입구에 주차장이 있는데요. 주차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2천 원의 주차비를 내야 한답니다. 시간에 관계없이 2천 원의 주차비를 일괄적으로 부과하고 있지요.


그리고 입장료 역시도 따로 내야 합니다. 1인당 3,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요. 입장료를 내고, 문화재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니, 어쩌면 입장료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지요.







"전등사 안에 있는 한옥카페"


전등사 안에는 제법 운치 있는 한옥 카페인 "죽림다원"이 있기도 합니다. 죽림다원에 관한 내용은 내용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 글에서 한 번 알아보도록 하지요.


여기까지, 강화도에 있는 여러 가지 역사가 깃든 절, "전등사"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인천광역시 강화도, 전등사"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운영시간 : (하절기) 8:00 - 18:30 / (동절기) 8:30 - 18:00

전화번호 : 032-937-0125

홈페이지 : http://www.jeondeungsa.org

특징 : 역사 유적, 절, 불교





소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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