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Henry James) '진짜(The Real Thing)'

헨리 제임스(Henry James) '진짜(The Real Thing)'


헨리 제임스(Henry James) '진짜(The Real Thing)'

무엇이 진짜일까? 겉모습만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이 진짜일까? 진득한 내면을 가진 것이 진짜일까?
이 작품, The Real Thing이라는 작품을 쓴 헨리 제임스라는 작가는 1843년부터 1916년까지 살았다. 그리고 그가 이 작품을 썼던 시기는 1892년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모습과 그가 살았던 시대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았나보다.

우리는 아직도, 어떤 것이 진짜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욕망이 아닌 만들어 진 욕망을 쫓는 대중들과, 그러한 욕망을 조작하는 사람들이 양립하는 현재, 지금 작품을 읽어도 큰 공감을 할 수 있을 만한 그런 작품이다.




진짜 같은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상상력을 제한한다?

이 작품의 화자인 "나"는 화가로 등장한다. 어느 날 잘 생긴 전형적인 귀족의 모습을 한 모나크 부부가 자신들을 모델로 써달라고 하며 화가의 화실에 찾아온다. 화가는 부탁받은 삽화의 모델로 그들이 진짜(The Real Thing)이라고 생각하며 모델로 쓰기로 한다. 작업을 부탁받은 상류 사회를 다룬 삽화를 그 진짜(The Real Thing)들을 모델로 삼아 몇 장 그려본 화가는 그들이 진짜라는 사실 때문에 자신의 상상력이 제한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상류 사회에 잘 어울리는 그들이 진짜같은 모나크 부부는 오히려 진짜 모델로서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화가는, 그들을 모델로 쓰지 않고, 전혀 진짜같지 않은 미스 첨과, 오론테를 모델로 쓰기로 결심한다. 모델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 모나크 부부는 화실의 심부름꾼 일을 자처하면서 화실에서 남아 생활을 유지하려 하지만, 화가는 그들에게 약간의 돈을 쥐어주고 그들을 떠내보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무엇이 진짜인가? 무엇을 중심으로 진짜를 판단해야 할까?

이 작품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 듯 하다. "진짜"라는 것, 어떤 것을 기준으로 두고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진짜는 항상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외모와 신분은 정말 진짜인 한 때 귀족이었던 모나크 부부, 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더 이상 귀족 행세를 하기 힘들어 보인다. 한 때 잘 나갔던 귀족, 하지만 지금은 형태만 귀족인 사람들... 이 사람들을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반대로 기존에 화실에서 모델로 일을 하던 하층민, 미스첨, 그리고 새롭게 영입된 또다른 하층민으로 추정되는 오론테, 두 명의 모델의 외모는 전혀 귀족스럽지 않지만, 모델로서는 훌륭한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 쪽의 인물들을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쉽지 않은 질문이다. 내면은 갖추었으나, 외면은 갖추지 못한 한 부류와 외면은 갖추었으냐, 내면은 갖추지 못한 한 쪽의 부류, 그 어느 한쪽도 진짜라고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모델로서의 가치를 갖는 "미스첨"과 "오론테", 그들이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진짜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 더 진짜라고 생각할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작품 속의 수많은 아이러니...

작품 속에는 수많은 아이러니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도도해 보였던 모나크 부인, 하인들인 미스첨과 오론테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작품의 후반부에서 그들이 모델로서 가치가 하락했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비참하게도 하인들이 맡아서 하던 일을 그들이 하면서까지 화실에서 남아 생계를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 이러한 부분이 하나의 아이러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위에서 이야기를 했던 부분, 어느 쪽을 진짜라고 부르기 어려운 부분, 이것 역시도 하나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모델로서는 부적합했던 그들의 모습이 문학적으로는 좋은 소재로 쓰일 수 있다는 것, 그것 역시도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듯 싶다. 이렇게 이 작품 속에는 아이러니가 가득 차 있는 듯 해 보인다.



외모지상주의 영국 사회를 비판하려는 작가

작가인 헨리 제임스는 이 작품을 통해서 영국 사회를 비판하려고 시도한 듯 하다. 외모에 대해서만 정체성을 갖고, 내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정신을 비판하려고 한 듯 하다. 그것을, "Camplacement Philistines"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 듯 한데, 이 단어를 구글에서 검색을 해보아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 내가 잘못 받아적은 듯 싶다.


심리적 리얼리즘

문예 사조적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이 작품은 리얼리즘에 속하게 되며 리얼리즘은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문예사조로 특징으로는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고 재현하려는 경향을 가지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부조리한 사회 현상과 도시의 현실 사회를 그대로 그려내려고 했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헨리 제임스의 리얼리즘은 특히, 심리적 리얼리즘이라고 분류되기도 하는데, 이 시기는 아직 모더니즘이 등장하기 이전의 시기이기 때문에, 리얼리즘으로 분류가 되긴 하지만, 그의 작품은 모더니즘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징들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심리적 리얼리즘은 인간의 행위를 내면적 동기에 의해 분석하는 경향을 가지는 특징을 가진다고 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역시,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제는 외모까지 성형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엇을 "진짜"라고 보아야 할 지, 쉽지 않은 부분이다. 진정한 문학은 세월이 지나도 그 가치를 잃지 않는다고 했던가, 헨리 제임스의 이번 작품을 통해서 그러한 점을 많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소인배

Since 2008 e-mail : theuranu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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