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전"
조별 풀리그 결과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된 대한민국, 16강전에서 예고된 수순대로 유럽의 강호 “이탈리아”를 상대로 일전을 벌이게 된다. 사실, 그 경기를 지켜보던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과연, 우리나라가 이탈리아를 이길 수 있으려나…”
호각소리와 함께 시작된 16강전 경기, 사람들은 열광에 휩싸였다. 우리나라가 8강 진출 티켓을 놓고 강호 이탈리아와 한판 승부를 벌이는 상황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나는 이번에도 스크린으로 보고 있었지만…
의외로 경기는 팽팽하게 전개되었다. 과연 우리나라가 이탈리아를 상대로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힘과 기술, 조직력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니, 이번에도 왠지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왔다.
“비에리의 선제골”
이탈리아에게 내 준 코너킥이 화근이 되었다. 토티 선수가 찬 코너킥은 이탈리아의 비에리 선수의 머리를 맞고 그대로 골대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환희로 들떠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정적했고, 갑작스러운 정적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색한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고, 우리나라의 조직력이 무너지지 않았으니, 계속 공격해나가면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기도 하다는 느낌이 든다. 당시 우리나라는 히딩크의 “매직’과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천수의 말디니 슛”
2002년 월드컵 하면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 것이 이천수 선수의 말디니 슛이다. 언제, 정확히 몇 분경에 벌어진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의 문전 앞에서 혼전 상황이 벌어졌다. 이천수 선수는 자신의 앞에 잇던 축구공을 찬다는 것이 그만, 말디니 선수의 뒤통수를 가격하고 말았다. 다행히 심판이 이 장면을 보지 못했던 것인지 경기는 그대로 진행되었고, 말디니 선수는 아픈 뒤통수만 부여잡고 아쉬움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장면이다.
훗날, 2002년 월드컵 당시의 경험을 사진과 함께 적어 출판한 이천수 선수의 자서전 격인 책에서는 당시 그 사건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다.
“당시 이탈리아 선수들이 상당히 거칠었어요. 알게 모르게 우리 선수들을 상대로 반칙을 많이 하는 비매너로 유명했죠. 김태영 선수는 이탈리아 선수에게 맞아서 코뼈가 부러지기도 하고… 그런 장면을 보니, 우리도 당하고만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그 장면을 회상했던 이천수 선수, “실수 반, 고의 반”으로 말디니 선수의 머리통을 차 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말디니 선수의 머리통을 차 버린 이후로, 이탈리아 선수들의 플레이가 조금 덜 거칠어졌다나...
“후반 43분, 경기 종료 직전, 설기현 선수의 천금 같은 동점골”
경기 종료까지 약 2분 남은 상황, 물론 추가시간을 고려한다면, 2분 이상 남은 상황이었겠지만, 정규 시간까지는 채 2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 수 차례의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의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이대로 경기가 끝나나 싶은 찰나, 이탈리아의 골대 앞에서 기회를 자은 설기현 선수, 기회를 맞이하고 힘찬 발길질을 해본다.
약간은 빗맞은 것 같은 그런 공… 설마 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설기현 선수가 찬 공이 이탈리아의 골대로 그대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골을 넣고 있는 힘껏 달려가면서 표효하는 설기현 선수의 기뻐하는 모습은 나 역시도 짠하게 만들었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그럼 감동이 몰려왔는데,‘이제 다 끝났다.’라고 생각했을 때 터진 한방이라 더 값진 골이 아니었나 싶다.
설기현 선수의 동점골에 힘입어 경기는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 경기 역시도 사실 정확하게 기억이 나는 부분이 많이 없다. 아무래도 멀리서 그 조그마한 스크린을 수많은 인파 속에서 바라보고 있었으니, 경기 내용은 잘 보이지 않았다. 경기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억이 나는 것이 있다면, 그때의 그 열기, 사람들의 환호성, 응원소리는 아직도 내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연장전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 역시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제 슬슬, 이대로 경기가 끝나고, 승부차기에서 승부를 내야 하는 상황을 기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탈리아의 수비가 워낙 튼튼하고, 우리나라의 수비 역시도 튼튼한 상황이니, 쉽사리 골은 터지지 않을 것 같았다.
△ 2002년 월드컵 대한민국 VS 이탈리아 하이라이트
“헤딩! 골!”
갑작스럽게, 가운데로 크로스를 올렸고, 안정환 선수를 비롯한 여러 선수가 뛰어올랐다. 안정환 선수의 머리에 맞은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이탈리아의 골대 한구석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대로 경기가 종료되는 순간이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연장전에서는 골든골 제도를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먼저 골을 넣는 쪽이 이기는 그런 제도, 물론 이후, 이 제도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딱 한 번만 쓰이고 더 이상 쓰이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지만, 당시 우리나라로서는 큰 혜택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골든골로 이탈리아를 격침시킨 안정환은 원래 인기가 많은 선수였지만, 그 덕에 더 많은 인기를 얻으며, 일약 스타에 발돋움하게 되고, 골을 넣은 후, 세리머니로 반지에 키스를 하는 모션을 취했던 관계로, “반지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당시,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가 막 개봉했던 시기라 자연스럽게 그런 별명을 얻게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6월 30일, 4강 진출 기념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다”
그렇게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이탈리아의 벽을 넘으며 8강에 진출한 대한민국 축구, 8강을 넘어서 4강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16강, 16강을 외치던 아시아의 조그마한 나라에서 단숨에 4강까지 진출하게 되었으니, 정말 국가적인 경사가 아니었다 싶다.
당시 4강에 진출한 쾌거로 인해, 월드컵이 끝나고 난 후, 6월 30일이 4강 진출 기념으로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기도 했던 추억이 생각나기도 한다. 꿈만 같았던 2002년 월드컵, 그런데 왜 난 그때 고등학교 3학년이라 제대로 놀지도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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