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와 이자겸의 난?

"굴비"와 이자겸의 난?


"굴비"와 이자겸의 난?


"굴비"는 조기를 말린 것을 가리킨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굴비가 유명한 곳으로는 전라도의 "영광"이라는 지역이 있지요. 지금은 발전소가 하나 덩그러니 있는 곳이라고 하지만 말이죠.


이렇게 우리가 굴비라고 하는 것에는 사실, 역사적인 내용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바로 고려시대의 문벌귀족이었던 "이자겸"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요.



"고려시대의 이자겸의 난"


이자겸은 고려시대의 사람으로 고려 "인종" 대인 1126년 "이자겸의 난"을 일으킨 인물로 역사 교과서에서는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살았던 시기는 중앙집권적인 정치가 점점 쇠퇴되고 문벌귀족들이 중심이 되어서 정권을 유지하는 구조로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벌귀족들은 최고의 권력을 누렸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왕실과의 혼인"이라는 수단을 사용했지요. 그중에서도 문벌귀족으로 대표되는 가문은 바로 이자겸이 속한 인주 이씨였는데요. 이자겸이라는 인물의 가계도를 그려보면, 상당히 독특하면서도 아스트랄합니다. 바로 자신의 둘째 딸을 고려 16대 왕인 "예종"에게 시집을 보내고, 이후 17대 왕인 "인종"에게는 자신의 셋째 딸과, 넷째 딸을 시집보내게 됩니다. 겹사돈도 아니고, 겹 장인이 된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2대에 걸친 왕실과의 결혼으로 인해, 그는 권력을 잡게 되었으나, 인종과의 마찰로 인해, "이자겸의 난"이라고 역사에 기록이 되며, 그의 권력은 진압이 되고, 그는 전남 영광군 법성포로 귀양을 가게 됩니다.



"이자겸과 굴비의 어원"


전남 영광군에서 귀양 생활을 하던 이자겸은 "말린 조기"를 먹어보고 그 맛에 반하여, 이 생선에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 바로 "굴비(屈非)"였는데요. 한자로 "굽을 굴"과 "아닐 비"의 두 글자로 조합이 된 이름이랍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바로 "결코 굴하지 않겠다."이지요. 그는 이 굴비를 왕에게 선물로 진상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선물은 주되,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긴 "명명"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여기까지, "굴비"의 어원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고려시대의 역사가 담긴 "굴비"에 대한 이야기였네요.


소인배

Since 2008 e-mail : theuranus@tistory.com

    이미지 맵

    도서관/역사 & 문화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