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속의 절 “조계사”
도심 속에서 불교 사찰을 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서 불교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핍박을 피해서 결국 산속으로 거의 모든 절들을 옮겨버렸기떄문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절”을 떠올리면 모두 험난한 산 위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 불교 사찰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조계사”이지요.
“서울 도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절, 조계사”
일반적으로는 이런 절은 “산”에서나 볼 수 있는데요. 조계사는 이러한 편견을 깨기라도 하듯, 서울의 중심에 있는 절입니다.
사실 조선시대에는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서 이 곳에 절을 세우는 것은 힘들었는데요. 그래서 조계사의 소개에는 “1395년” 태조 이성계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언급이 되어 있으나, 실제로 조계사가 이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10년이라고 합니다.
“1910년에 서울 도심에 자리를 잡은 조계사”
조계사가 서울, 4대문 안의 도심에 자리를 잡은 것은 대한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한국 불교에는 구심점이 될 종단이 없어서 일본 불교 세력이 밀리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만해 한용운” 등의 민족적 불교인사들이 새로운 종단을 구성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로 1902년 동대문 밖에 “원흥사”라를 창건하고, 1908년에 각 도의 사찰 대표 65인이 원종 종무원을 설치했다고 하지요.
이들의 목표는 한양 사대문 안에 절을 세우겠다는 것이었는데요.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서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한제국 시대에 이런 계획이 추진된 것이지요. 하지만, 안타까운 것이 있었다면, 지금의 조계사 옆자리에 “각황사”라는 절을 설치하고, 대한제국의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맙니다.
이후, 여러 가지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서, 일부는 친일을 하고, 일부는 민족주의 운동으로 이어나가게 되는데요. 여러 가지 사건이 벌어지면서 상당히 복잡한 역사를 가진 곳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어찌 됐건 간에 서울 도심 안에 이렇게 “절”이 있게 된 것이지요.
“대웅전과 사천왕”
조계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물은 “대웅전”이라는 건물입니다. 대웅전에는 불상 3좌를 봉안했고, 이를 삼존불이라고 하는데요. 아미타여래, 석가여래, 약사여래의 세 불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답니다.
2013년 11월 26일에는 사천왕상을 일주문 앞에 새롭게 설치를 했다고 하는데요. 철판을 잘라서 겹쳐서 만든 형태입니다. 그래서, 그 무게도 상당하다고 하는데요. 하나당 무려 1톤의 무게가 나간다고 하지요. 4천왕의 이름은 왼쪽부터 순서대로 증장천, 광목천, 다문천, 지국천이라고 하지요.
여기까지, 대한민국 불교의 역사를 담은 한양 도심 속의 절, 조계사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인사동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곳인지라 찾아가기도 어렵지 않은 곳이랍니다.
“서울 도심 속의 절, 조계사”
특징 : 불교, 근현대사, 조계종, 친일, 민족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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