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서울 문묘, '성균관' "성균관스캔들? 커밍아웃을 한 은행나무?"

[대학교] 서울 문묘, '성균관' "성균관스캔들? 커밍아웃을 한 은행나무?"


[대학교] 서울 문묘, '성균관' "성균관스캔들? 커밍아웃을 한 은행나무?"

블로그 운영 초창기라고 해야할까? 초창기라고 하기에는 그리 썩 오래 된 편은 아니지만, 약 3년 정도 전쯤에 소인배닷컴이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후로 "시골청년의 서울나들이"라는 제목으로 서울 여행기를 나름의 시리즈로 연재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글을 쓰는 스타일부터, 사진을 찍는 것까지 모두 "흔한" 블로거 수준이었던지라, 이번에 이렇게 새로운 카메라와 함께 다시 한번 같은 장소를 방문해서 사진도 업데이트를 하고 글도 새롭게 업데이트를 하려고 한다.



"성균관, 같은 장소 다양한 느낌을 전달하는 공간?"


소인배닷컴에게는 성균관이라는 곳이 주는 이미지라고 한다면, 조선시대 "엘리트 집단"이 거주했던 곳,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이면서 최고(古)의 대학 중의 하나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고 할 수 있다. 소인배닷컴이 꼭 이 곳에 몸을 담고 있어서 그런 것 뿐만이 아니라, 이 대학으로 진학하기 전부터 품고 있었던 그런 생각이다. 아무래도, 나름 우리나라의 역사와 근현대사를 열심히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기에 "성균관"하면 긍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성균관스캔들"이라는 드라마에서 등장했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떠오를 듯 하기도 하다. 실제 성균관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던 송중기 학생이자 배우가 등장했었던 성균관스캔들, 소인배닷컴은 아직까지 보지는 않았지만, 한 때 상당히 많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임에는 틀림이 없고,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런 드라마 중의 하나였으니... 예전에 들렸던 소문으로는 "성균관스캔들"의 인기에 힘입어 "성균관대"의 인기 역시도 덩달아 상승을 했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 곳에 있으면, 가끔씩 외국인 관광객들이 방문해서 사진도 찍으면서 감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다.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많아서 그런 것이지, 일본인 관광객들이 자주 보이는 듯한 모습이다. 아마도 이 분들에게는 성균관하면, "송중기"가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기도 한다.


"성균관대학교 정문을 통과하면 바로 오른쪽으로 보이는 옛 성균관"

사실 성균관대로 이적을 하고 난 후, 가장 신기하면서도 좋았던 부분이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바로 학교 안에 옛 유적인 성균관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는 모습인데,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갈 때, 정문을 통과하면 항상 눈에 보이는 것이 바로 이 "성균관"이니 말이다. 덕분에 이 곳 학생이 아닌 외지인들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러한 공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출입구가 좀 크고 넓게 개방되어 있는 모양새는 아니고, 왠지 모르게 쪽문을 통해서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기에 이 곳을 처음오는 사람들은 "입구"를 잘 찾지 못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문인 것처럼 보이는 신삼문


"정문인 것처럼 보이는 '신삼문',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열린다."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정문"으로 추정되는 "신삼문"의 경우에는 평소에는 닫혀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 문은 특별한 경우에만 열리는 모습인데, 성균관을 크게 나누어 보면 "문묘"를 위한 장소와 "강의"를 위한 장소로 나누어져있는 모습인데, "문묘"에 위치한 공간, "제사"를 위한 공간이 그 목적으로 쓰일 경우에만 문이 열리는 모습이다. "공부자탄강일"이라거나, "고유례 졸업식"과 같은 행사가 있을 때만 문이 열린다. 성균관대 학생들도 이 문이 열리는 것을 평소에는 잘 보지 못하는 편이라, "신삼문"이 활짝 열리는 것을 보면, 왠지 내 마음도 활짝 열리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 양쪽이 진짜 출입구다!


"성현에 대한 제사를 위한 공간, 대성전"

가끔씩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만 열리는 대성전의 문, 신산문이 활짝 열리는 경우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로는 공자님의 생신인 "공부자탄강일"이 그런 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유교의 중심이 되는 공자님이 탄생하신 날이다보니, 마치, 불교의 부처님 오신날이나, 기독교의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그런 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마도 공부자탄강일이라는 날은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만 상당히 유명한 날일 듯 하다. (소인배닷컴 역시도 학교에 들어오고나서야 처음으로 들어볼 수 있었던 그런 날이니 말이다.) 공부자탄강일이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유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공부자탄강일이 학교 건학기념일과 같은 급의 날로 치기때문이다. 그 말인 즉슨, 바로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쉬는 날"이라는 것! 그래서 그 날은 수업을 하는 대신, 대성전에서 특별한 제사를 올리는 것으로 알고있다. 공부자탄강일에 펼쳐지는 추기 석전대제, 이 날에는 은근히 유명한 분들이 이 곳을 한번씩 방문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예전에도 유인촌 전 문화부장관이 방문했던 기록이 있으니 말이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은근히 성균관 안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


"교육을 담당했던 공간, 명륜당"

대성전이 제사를 위한 공간이라면, 명륜당은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쓰인다고 한다. 조선시대 국내 유일한 대학교였던 성균관, 그 가운데에 있는 명륜당에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를 했던 공간이라고 한다. 나름 은근히 부러운 부분이 있다면, 명륜당의 경우에는 "기숙사"로 쓰였던 동재와 서재에서 상당히 가깝다는 것! 기숙사 방에서 나와서 등교하는 데까지 채 1분도 걸리지 않을 그런 거리이다보니, 왠지 부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둥둥둥둥! 일어나라 학생들이여!


"옛 성균관 학생들이 묵었던 공간, 동재와 서재 기숙사"

명륜당을 가운데로 동쪽과 서쪽으로 옛 성균관 학생들이 묵었던 기숙사가 들어서있다. 양쪽으로 길쭉한 모양으로 만들어 진 건물이 늘어서있고, 그 건물에는 조그마한 방이 하나씩 있는 모습이다. "소과" 시험에 합격한 학생들이 성균관으로 들어와서 공부를 했던 곳, 그들이 묵었던 공간이 바로 이 동재와 서재다. 예전에는 서재도 개방한 듯한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동재만 개방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 아마 관리가 어려워서 한쪽만 개방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재미있는 것은 동재와 서재에 딸려있는 각각의 방마다 고유한 "이름"이 있는 듯한 모습인데, 당시 기숙사에는 이렇게 각각의 방에 고유한 이름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상당히 감성적이면서도 섬세한 것에 많은 신경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각 방에 붙은 이름을 풀어서 보아도 아마 모두, 몸과 마음을 바르게 닦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진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커밍아웃을 한 은행나무? 성균관의 중심에 있는 600년이 넘은 은행나무"


성균관의 중심에는 무려 600년이 넘게 이 곳을 지키고 있다는 전설적인 은행나무가 있다. 오래된 은행나무라서 그런 것인지 멀리서 보아도 눈에 바로 들어올 정도로 그 규모가 상당하다. 덕분에 단풍이 멋들어지게 드는 가을에 오면 더 멋진 경치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그런 멋진 나무가 아닐까 싶다.

이 은행나무에는 상당히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원래 이 곳에 있는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는 암나무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커밍아웃을 해버린 것인지 더 이상 이 나무에서 은행이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아주 오래 전, 이 곳에서 공부를 하던 유생들이 "은행" 열매에서 나는 특유한 냄새떄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하는데, 하루는 공부하던 유생이 "제발, 은행 좀 그만열려라!"라고 불평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은행나무가 알아들었던 것인지, 그 이후로 은행이 더 이상 열리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믿을만한 소리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나무 전문가분의 이야기를 빌려보면, 은행나무가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면서, 열매를 맺는 암나무에서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로 자연스럽게 변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확실히 알려진 사실은 이제 더 이상 이 곳에서 은행나무 열매 냄새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주말이 되면, 전통혼례가 열리기도 한다."


매주 주말이 되면, 이 곳은 사람들로 붐빈다. 바로, 전통혼례가 열리는 곳 중의 한 곳이 바로 이 곳, 명륜당인 것이다. 예전에는 야외에서 전통혼례를 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실내로 그 장소를 옮겨버린 듯하다. 가끔씩 주말에 학교를 가게 되는 일이 생기면, 이 곳에서 혼례를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잘 들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전통혼례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공간 중의 하나라는 것! 전통혼례에 관한 이야기는 아마도 성균관 바로 옆에 있는 "유림회관"에서 그 정보를 접할 수 있을 듯 하다.


"보너스로 탕평비까지..."


우리가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서 남의 이야기마냥 들어왔던 탕평책, 정조 시대에는 탕평책을 중용하기 위해서 "탕평비"까지 세웠다는 내용을 접해볼 수 있었는데, 그렇게 책을 통해서 글로 접할 수 있었던 탕평비를 성균관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모습이다. 성균관대 정문을 통과해서 왼쪽을 보면, 탕평비가 아직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탕평비 옆에 있는 것은 "하마비"로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말에서 내려서 걸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비석이다.

항상 다시 한번 작성해야지... 라는 마음만 먹고 있었던 "성균관"에 관한 이야기, 이제서야 드디어 다시 한번 작성해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전통적인 문화유산이 깃들어있는 장소는 함부로 포스팅을 하기가 어려운 듯 하다. 괜히 잘못된 정보를 전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선뜻 글을 작성하려 들지 않는 듯 하니 말이다. 혹여, 위에 작성한 글 중에서 틀리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꼭 알려주길 바라면서 짤막한 글을 마치도록 한다.


"서울 문묘와 성균관"

관람시간 :
동절기(11월~2월) 9:00 ~ 17:30
하절기(3월~10월) 9:00 ~ 18:00




소인배

Since 2008 e-mail : theuranu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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