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조선 궁궐 “덕수궁(경운궁)”

서울 조선 궁궐 “덕수궁(경운궁)”


서울 조선 궁궐 “덕수궁(경운궁)”


옛 서울의 중심지에는 많은 궁궐이 있습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창덕궁, 창경궁과 같은 궁궐이 있고, 그 외에도 크고 작은 궁궐이 있습니다. 여기에 다른 궁궐처럼 터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조선의 5대 궁궐에 손꼽히는 궁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덕수궁”이지요. 덕수궁은 과거 “경운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었던 곳입니다.



“서울의 5대 궁궐은 어디인가?”


서울의 5대 궁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서울의 5대 궁궐이 어디인지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고 가도록 하지요. 5대 궁궐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랍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궁궐이 바로 조선의 정궁으로 사용되었던 경복궁이 아닐까 하지요.





“덕수궁, 월산대군이 거처하기 위해서 지은 사저에서 출발한 궁궐”


덕수궁은 원래 월산대군이 거처하기 위해서 지은 사저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피난길에서 돌아온 선조가 월산대군의 저택을 개조해서 임시 거처인 정릉행궁으로 사용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하지요.


이후에는 창덕궁이 중건되어서 덕수궁은 역사 속에서 잠시 잊힌 공간이 되었습니다만, 구한말에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공간이 됩니다. 바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이 “1987년”에 이 곳으로 돌아오면서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어찌 생각해보면, 덕수궁은 조선의 다른 궁궐보다 “근대”에 주목을 받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시대의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 주 무대가 바로 이 곳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구한말 역사의 중심지로 사용된 대한제국의 황궁”


이렇게 덕수궁은 1897년 고종 황제가 아관파천 이후 환궁할 때, 덕수궁으로 돌아오면서 구한말 역사의 중심지가 됩니다. 이 곳으로 환궁한 고종은 이후 죽을 때까지 덕수궁에서 지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대한제국 시대의 중요한 사건은 모두 이 곳, 덕수궁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1980년대 복원되기 시작한 덕수궁”


조선의 다른 문화재도 그렇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게 됩니다. 덕수궁 역시도 많은 손실이 발생했는데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덕수궁은 사실 1980년대부터 복원되기 시작한 덕수궁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름 역사적인 고증을 통해서 복원을 했겠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건물의 위치가 바뀌기도 하는 등, 완벽한 복원은 되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로 덕수궁의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는 “대한문”의 이전 과정이었는데요.


복원하는 과정에서 도로에 둘러싸여 고립된 대한문의 위치를 이전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이 대한문을 통째로 들어서 이동시켰다는 내용이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조선의 건축과 서양식 건축이 조화된 궁궐”


덕수궁은 다른 궁궐과는 달리 서양식 건축물을 많이 볼 수 있는 궁궐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구한말에 주무대로 활용된 궁궐이다 보니, 이렇게 신문물을 받아들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그래서, 다른 궁궐과는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근대화의 느낌이 들기도 하고, 확실히 건물만 보아도 완전히 조선의 느낌과 서양의 느낌이 조화된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



△ 정관헌


“고종황제가 커피를 즐겼다는 정관헌”


이 궁궐을 아마도 가장 오랜 시간 활용한 인물이 고종 황제가 아닐까 하는데요. 고종 황제는 “커피” 마니아였다고 합니다. 신문물 중의 하나인 커피에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하는데요.


고종황제는 이런 커피를 “정관헌”이라는 곳에서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정관헌이라는 건축물은 서양식 느낌이 드는 건축물인데, 러시아 건축가 “사바낀”이 약 1900년대에 건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한국과 서양식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형태라고 하지요. 이 곳은 “고종황제”가 커피를 마시며 외교 사절들과 연회를 즐긴 공간이라고 합니다.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하면 항상 따라오는 미신이 있습니다. 바로 “돌담길”에 관한 미신인데요. 바로 돌담길을 연인과 함께 걸으면, 결국에 헤어지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지요.


이런 이야기가 돌게 된 이유에는 아마도 가정법원의 위치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과거에 서울 가정법원으로 가려면 항상 이 길을 지나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혼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 길을 걷는다고 하여, 이런 미신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실제로 남녀관계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에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덕수궁 돌담길은 운치 있는 분위기이지만, 길을 따라가는 주변에 가게 등이 적어서, 상대에게 집중하면서도 이성적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는 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서, 이런 결과가 나온다고 분석을 하기도 했다고 하지요.


여기까지, “조선의 5대 궁궐” 중의 하나인 “덕수궁”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서울 종로 덕수궁”


특징 : 궁궐, 조선시대, 선조, 고종황제, 대한제국 유적





소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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