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동문 "동대문(흥인지문)"

서울의 동문 "동대문(흥인지문)"


서울의 동문 "동대문(흥인지문)"


서울에는 이렇게 서울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있습니다. 예전 서울의 성터가 그대로 남아서 복원되어 있는 곳이 있는 것이지요. 물론, 성벽까지 완전히 복원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최소한 성문은 그대로 도심 속에 남아서 이렇게 현대적인 도시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편이기도 합니다.




"서울 도성의 동문, 동대문"


과거 서울 도성은 동서남북에 대문이 있었습니다. 물론, 곳곳에 있는 조그마한 문까지 모두 세본다면, 더 많은 문이 있을 것이지만, 대표적으로 큰 "대문"은 이렇게 동서남북에 두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각각의 대문에는 각각의 이름을 하나씩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이렇게 "인, 의, 예, 지"의 이름을 지어준 것인데요. 그중에서도 동쪽에 있는 동대문의 이름을 "흥인문"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현판에 "지"자를 추가했는데요. 이는 동대문 앞의 평평한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한 의미라고 했다고 하지요.


△ 청계천



"우리나라의 보물 제1호, 동대문"


동대문은 우리나라의 보물 1호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동대문은 "1869"년인 고종 6년에 지은 것이라고 하니, 엄청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유산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마도 도로 옆에서 현대적인 도시와 잘 조화를 이루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요.


동대문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아래에서 정리를 해볼 수 있답니다.


"보물 제1호 동대문"


지정번호: 보물 제1호

시대: 1869년 (고종 6)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6가 69번지


흥인지문은 1398년(태조 7)에 세운 당시 서울 도성의 동쪽 문이다. 지금의 문은 1869년(고종 6)에 다시 지은 것이다. 당시 서울 성곽에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세웠다. 동서남북의 사대문에는 각각 인(仁), 의(儀), 예(禮), 지(智)의 글자를 넣어 이름을 지었는데, 그중 동쪽의 대문을 흥인문이라고 하였다. 현판에 지(之) 자를 넣은 것은 동대문 앞의 평평한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한 의미라고 한다. 흥인지문은 서울의 숭례문과 더불어 가장 규모가 큰 성문이다. 성벽과 이어진 축대에 아치형의 통로를 내고, 그 위로 문루를 세워 성문을 만들었다. 서울의 성문 가운데 문루를 2층으로 만든 것은 숭례문과 흥인지문 밖에 없다. 문루는 문을 지키는 장수가 머무는 곳으로 유사시에는 군대를 지휘하는 지휘소의 역할도 한다. 문루 바깥으로는 벽돌로 된 담장과 나무판으로 된 창문을 설치해서 적을 막는 데 유리하게 하였다. 흥인지문의 문루는 구조의 맞춤은 간단하고 장식이 많은 19세기의 건축적 특징을 잘 반영한다. 또 흥인지문의 앞에 적을 막기 위한 반달 모양의 옹성을 둘렀는데, 이는 서울 성문 가운데 유일하다.





"동대문 건너편에서 공사를 하고 있던 상황"


이렇게 일부러 이러한 살아있는 역사를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서 동대문을 방문했는데요. 아쉽게도 동대문 맞은편에서는 공사가 진행 중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동대문을 뒤쪽에서 바라보니, 공사를 하는 장면이 배경으로 등장해서 조금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까지, 동대문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서울 동대문(흥인지문)"


특징 : 문화재, 보물 제1호, 사적, 역사



소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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