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생의 이야기 12 "경북대학교 결과 발표"

이적생의 이야기 12 "경북대학교 결과 발표"


이적생의 이야기 12 "경북대학교 결과 발표"


"2월 12일 토요일"


설날도 지나가고, 마지막 경북대학교 결과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12일 낮에는 연세대학교 학업계획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많은 도움을 줬었던 태진이 형의 결혼식도 있었고, 내일 고등학교 동창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기에 오랜만에 친구들이 다들 한자리에 모였다. 결혼을 하는 친구와 몇몇은 수요일쯤에 따로 모였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결혼을 하는 녀석이었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모르는 우리는, 13일에 있을 결혼식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개략적이나마 계획을 짰었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아무도 축가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내가 축가를 맡게 되었다. 준비했던 시험도 다 떨어진 마당에 축가라니, 정말 난감했다. 내가 즐겁지 않은데 남을 축하한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가 내게 축가를 부탁했던 시기는 시험 원서를 쓰기 이전의 일이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번복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리고 12일, 오늘 저녁에는 결혼식을 앞두고 오래간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였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도 있고,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나는 모르는 친구들도 있었다. 오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내 친구였기 때문이다.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던 친구도, 내가 모르는 친구였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앉아있는데 앞자리에 있던 친구가 말을 건다.


"무슨 일 있나? 안색이 안좋노."

"아… 그냥 요즘에 하는 일이 잘 안돼서…"

"일? 무슨 일? 니 사업하나?"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잘 안 풀리네."

"안 풀리는 건 다 똑같지 뭐…"



"야, 강현이 니 SKY 근접했다매." 오랜만에 본 성진이가 갑자기 내게 말한다.

"최종에서 다 떨어졌다." 내가 대답한다.

"내년에 되겠지."



오랜만에 친구들을 보면 즐거워야 하는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썩 기분 좋기만 한 자리는 아니다. 아무래도, 친구들은 그래도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고 취업도 하고 하는데… 나만 그 자리에 정지되어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누구는 결혼을 하는데, 난 아직 학교도 제대로 못 간 상황이고…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 건, 즐겁고 축하를 해주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니, 씁쓸하기만 하다. 저녁을 먹고, 간단하게 맥주를 한잔 하고 가자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경북대학교 최종 결과 발표날이다. 오늘은, 그냥 술자리도 있고 해서 내일 집에 가서 확인을 해보려고 하는데,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보챈다. 지금 확인을 해보라고 말이다. 때마침 노트북을 가져갔던 상황이라, 노트북을 꺼내서 경북대학교 홈페이지에 접속을 해서 이름과 수험번호를 넣고, 확인을 해본다. 이번에도 익숙한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혹시나 하는 희망은 있었지만, 결국은 역시 나로 끝이 났다. 이번에도 탈락이다. 연세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 1차를 합격하면서 이번에는 뭔가 하나 건져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은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수능을 준비하는 것이다. 우선, 내일 있을 친구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고 말이다.



"2월 13일, 친구 결혼식"


아침에 눈을 뜬다. 어제 마지막으로 확인을 했었던 경북대학교마저 탈락을 하긴 했지만, 오늘은 친구 결혼식이다. 축하를 해주러 가야 한다. 게다가, 중요한 축가를 맡기도 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컨디션을 조절을 해야 한다. 아침부터 축가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라니, 노래는 저녁에 불러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힘든데 말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전략은, 아침 내내 아무것도 안 먹고 물만 마시기였다. 아무래도 배가 부르면, 노래를 부르기가 힘이 드니,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먹으면,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노래가 잘 안되니… 시험 탈락의 충격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축가를 불러야 한다.


그냥 노래도 아니고, "축가"를 말이다. 축가… 말 그대로 축하하는 노래인데, 이 상황에서 과연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온다. 하지만, 지금 와서 대타로 쓸 사람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등 떠밀려서 가는 그런 상황이 된 것이다. 결혼식장에 도착을 해서, 친구들과 기다린다.


나와 사회를 맡은 친구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웨딩카를 꾸미러 내려간다. 어차피 해야 할 것, 그냥 기분 좋게 노래를 부르고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리만큼, 순서를 기다리는 내내 긴장이 안된다. 슬슬, 긴장이라는 감각에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노래가 노래가 시작이 되고 MR이 들려오니, 긴장감이 급격히 몰려온다.

혹시나 가사를 잊어버리거나 박자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말이다.


'연습하던 상황과 똑같다고 생각을 해버리자… 눈을 감아버리자…'


그렇게 눈을 감고, 평소에 연습하던 곳이라고 생각을 하고, 노래를 부르니, 그나마 긴장이 덜된다.

1절이 끝났다. 잠시 눈을 떠 본다.


'원래 노래가 이렇게 길었나… 평소에는 1절이 금방 지나갔었는데…'


정말, 2절을 부르기 싫어질 정도로… 채 5분도 안 되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다. 2절 후반부에, 숨이 차고 힘이 들어와서 약간 고전을 했지만, 여태가지 연습했던 것 중, 가장 잘 불렀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물을 많이 마시는 작전이 유효했던 것 같다. 그렇게, 친구는 결혼을 했고, 나도 내 임무를 완수했다. 이제 오늘 저녁부터는 수능을 준비할 준비로 전환하면 되는 것이다.


소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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