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버턴(Robert Burton) '우울증의 해부(The Anatomy of Melancholy)'

로버트 버턴(Robert Burton) '우울증의 해부(The Anatomy of Melancholy)'


로버트 버턴(Robert Burton) '우울증의 해부(The Anatomy of Melancholy)'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이번 학기에도 션노르만딘 교수님의 수업, "영미산문의 이해"라는 수업에서였다.
교수님께서는 주로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생소한 작품을 주로 가져오는 것 같은데, 이 책은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복잡하면서도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 다음에 읽었던 존 로크의 "인간지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이라는 책도 상당히 이해하기 난해한 내용을 담고 있었긴 하지만 말이다.

중간고사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한글 번역본을 빌리게 되었다. 원서 그 자체로는 너무 심오하기도 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 등에서 가져온 내용도 상당히 많은데다, 그 내용들이 심지어 번역도 없이 라틴어로 쓰여져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보를 전달하는 글의 형태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비유적 표현들이 낭자하기도 했다.

기껏, 번역본을 구해서 읽게 되었지만, 수업 시간에 다루었던 부분을 정확하게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 책은 완역본이 아니라, 일부만 번역해 놓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은 중간고사를 준비하는데는 거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그래서 시험이 끝나고 시간을 내서 한번 읽어보게 되었는데, 책의 처음 부분만 읽어보아도, 로버트 버턴이라는 사람은 상당히 재미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버트 버턴이라는 작가는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라고 한다. 1577 ~ 1640년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세익스피어보다 13년을 늦게 태어났지만 그보다는 24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1593년에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였고, 죽을 때까지 '스칼라' (학비와 기타 비용을 면제받는 일종의 특별우대 장학생)의 신분으로 공부만 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책의 구성 자체도, 시도, 소설도, 희곡(드라마)도 아닌, "수필"에 가까운 형태를 띤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로운 점이기도 하다.
우울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파헤쳐보려고 하지만, 그냥 작가가 평소에 마음 속에 담아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두서없이 풀어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우울증에 관하여 다루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것의 원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그것의 증상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주로 이야기가 새는 부분은 그것의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지엽적인 원인에서 조금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 퍼져나가다보니, 그렇게 이야기가 두서없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작가가 두서없이 주제와 상관없이 이야기를 하는 부분도 있는데, 그 부분이 바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향의 세계(국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이다.

책의 초반부에는 자신이 데모크리토스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나간다. 데모크리토스는 그리스 시대의 사람으로 "우울증"에 관한 연구를 하였지만, 결국 연구를 마치지 못하고 죽은 학자라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그의 일을 계속해서 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그렇게 주장을 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책을 쓴 작가 자신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책을 쓰는 사람은 모두가 도둑이다라고 주장을 한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책을 쓰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하나같이 도둑놈들이다. 그들은 예전의 작가들이 써놓은 글에서 도둑질하여 자기 책의 내용을 채운다. 새로운 것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이미 예전에 다른 사람이 한 말들이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우울증을 겪는 환자라고 이야기를 하고, 인간들의 행태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우울증의 원인에 대해서 다루는 부분에서는, 사람의 신체 속에는 휴머(Humor)가 있다고 믿는 부분이 나온다.
언제부터 이러한 생각이 등장하게 되었는 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최소한 르네상스 이전부터 있었던 내용인 것은 확실한 듯 하다. 이 책의 작가가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중세 문학을 하다보면 항상 등장하는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휴머(Humor)에 관하여...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 중 하나가 "휴머(Humor)"라는 것인데, 이 휴머는 우리 몸 속을 흐르고 있는 일종의 체액으로 우리가 태어날 떄부터 선천적으로 몸 속에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후천적으로 외부로부터 생겨날 수도 있으며 습득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 휴머(Humor)를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것들이 바로, 담즙(Choler), 피(Blood), 담(Phlegm), 검은 담즙(Black Bile)이라고 한다. 이 네가지 체액들은 우리 우주를 이루고 있는 네 가지 근본요소, 물, 불, 공기, 흙과 크게 유사하고 연관성이 있으며, 동시에 우리 인간의 네 가지 단계, 생, 성, 노, 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담즙이 몸 속에서 많아지게 되면, 화가 난다고 한다.
피가 몸 속에서 많아지게 되면, 우리 몸에 힘과 활력을 준다고 한다.
담이 몸 속에서 많아지게 되면, 사람이 게을러지게 된다고 한다.
검은 담즙이 몸 속에서 많아지게 되면, 사람이 "Melancholy", 즉 우울해진다고 한다.

Choler → Angry
Blood → Sanguine
Phlegm → Lazy
Black Bile → Melancholy

세익스피어의 희곡에서도 "멜랑콜리"에 관한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아마, 이러한 것이 있다는 믿음이 그 시대에는 팽배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우울증의 어원에 대하여...

그리고 우울증의 어원에 대한 이야기도 하는데, 우울증(Melancholy)는 "Melancholia"에서 왔다고 한다.
이는 검다는 뜻의 "Melania"와 담즙(Choler)의 합성어라고 한다.
즉 검은 색으로 변한 담즙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렇게 책에서는 우울증에 대한 연구와 분석, 그리고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섞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사랑 또한 하나의 우울증이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종교 또한 하나의 우울증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에 관한 이야기도 풀어내고 있다.
글이 전체적으로 난해하고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이 작가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점은, 이렇게 긴 글 내내, 상당한 양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 다른 이야기를 끌어와서 이야기를 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된 책을 읽다 보면 감탄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 책 역시도 그런 책 중의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인배

Since 2008 e-mail : theuranus@tistory.com

    이미지 맵

    도서관/서평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