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콘레드(Joseph Conrad) '문명의 전초지(An Outpost of Progress)'

조셉 콘레드(Joseph Conrad) '문명의 전초지(An Outpost of Progress)'


조셉 콘레드(Joseph Conrad) '문명의 전초지(An Outpost of Progress)'

4학년 1학기, 영미단편소설 수업 시간에 접하게 된 영어로 쓰여진 단편 소설 중의 하나이다. 사실, 영문학과 전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3학년 때까지는 시 위주의 수업을 들어왔기 때문에, 이 수업이 아마도 내가 수강한 수업 중에서 소설만 다루는 첫 번째 수업이었다. 게다가, 교수님이 한국인 교수였기 때문에 외국인 교수의 수업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상대적으로 많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최종적으로 이 수업을 통해서 받아든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영미 단편 소설에 대해서 접해 보고 이야기를 들어본 계기가 된 그런 수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 문명,
문명에서 벗어나 대자연 앞에 던져진다면? 우리는 그래도 문명인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상당히 중요하다. 자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개체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접하고 있는 이 환경은 언제든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는 것이다.

"문명" 문명은 무엇인가? 갑작스럽게 문명이라는 이야기를 하니, 시드마이어의 문명이 생각나면서 '간디"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순순히 금을 내놓는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간디의 대사가 떠오르듯이, 문명이라고 대표되는 것은 "도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문명 보드게임에서 간디가 이끄는 인도는 시작부터 대도시로 시작하는 특권을 갖는다. (이건 정말 이 작품과 관계없는 소리지만...)

그렇게 문명이라는 거대한 보호막 아래서 자란 사람들이 만약 대자연 앞에 갑작스럽게 방치가 된다면, 그들은 과연, 문명을 쌓아 올린 인간의 위대함으로 새로운 땅에서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을 쌓아 올릴 수 있을 것인가?


두 명의 무능해 보이는 백인 주인공,
문명에 대한 조롱이 담긴 이야기일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두 명의 백인 주인공, Kayerts와 Carlier, 편의상 카이예츠와 칼리어라고 해두자, 문명 세계에서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두 남자, 문명을 개척하고 전파하라는 미명으로, 두 남자는 아프리카 변방의 무역 출장소로 부임받는다. Kayerts는 딸의 지참금을 만들기 위해, Carlier는 퇴역 군인으로 그곳에 배치를 받았다. 무역 출장소의 전임자가 열병으로 사망하였기에 그들이 새롭게 부임하게 된 것이다. 실질적으로 무역 출장소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개화한 원주민 Makola(마콜라, Henry Price))다. 이들 두 백인은 책을 읽으면서 출장소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고, 그 곳에서 예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책을 읽으며, 문명의 신비에 대해서 그제서야 감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뭔가 바보같아 보이는 그들, 기존의 구세계에서는 왠지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해서 이렇게 외진 곳으로 배치를 받은 것 같은 그런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는 대목이다.

어느 날, 출장소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Makola(마콜라)가 상아와 무역 출장소 일꾼을 교환한 일을 계기로 좋지 않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들에게 우호를 보이던 이웃 원주민들과의 교류도 끊어지고, 그들과의 관계는 적대적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무역선도 오지 않아 고립된 생활을 하며 마음이 황폐해 진 그들은 설탕 한 조각으로 사소한 시비가 붙게 되고,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된다. 결국, 혼전 중에 Karlier가 쏜 총알에 Carlier가 맞아서 사망하게 되고, Karlier는 목을 메어 자살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끝이 난다.



문명과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작가의 시각

작가, 콘래드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려고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인간들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바보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야생"에 직면했을 때,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두 백인, 문명 사회에서 온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문명과 자신의 문명을 계속해서 확장시키려고 하는 제국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


모더니즘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가, Joseph Conrad

문예사조적인 측면에서 작품을 바라본다면, 콘래드는 모더니즘(Modernism)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문예 사조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수업시간에 그렇다고 배웠다.

첫 번째는, Conradian narrative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무관심한 신(Indifferent God)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부분이다. 콘래드는 한 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도 한다. "우주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에서, 신에 의해서 통제되거나 보호되는 그러한 세계관이 아니라는 것, 그의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신의 가호가 있었다면,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일명 그로테스크(Grotesque)한 이미지를 많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로테스크란,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정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 번째, 제국주의(Imperialism)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카이예츠와 칼리어는 어떻게 보면 제국주의의 희생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비단, 주인공들 뿐만 아니라, 무역 출장소에서 노예처럼 일을 하는 일꾼들 역시도 제국주의의 어두운 단면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구대륙의 문명 발전을 위해서 신대륙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소설 중의 하나이니 말이다.


문명 확장의 어두운 면을 다룬 한 편의 소설, 오래된 단편 소설의 하나,
덕분에 문명과 발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해 준 소설이다.
물론, 내용도 한번 차근차근 읽어가면, 바보같은 백인들의 모습에서 약간의 실소도 금치 못하는 소소한 재미를 준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인배

Since 2008 e-mail : theuranu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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