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탄금대 공원"

충주 "탄금대 공원"


충주 "탄금대 공원"


충주에는 탄금대라는 제법 잘 알려진 곳이 있습니다. 이 곳은 특히 역사책에서 많이 들어본 곳일 텐데요. 그 이유는 바로 "임진왜란"에서 등장한 "탄금대 전투"의 여파 때문일 것입니다.


탄금대는 조선의 신립 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 곳으로 유명하지만, 이 곳은 그 이전에 "우륵"의 이야기가 깃든 곳이기도 합니다.



"탄금대의 이름은 가야의 우륵에서 나왔다?"


이 탄금대의 이름은 바로 신라시대 가야의 우륵이 가야금을 탄 것에서 나온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야에서 신라로 우륵이 귀화하자, 당시 신라의 왕이었던 진흥왕이 이에 크게 기뻐했는데요. 그래서 우륵을 충주로 보내서 살게 했습니다.


우륵은 이 곳에서 터를 잡고 가야금을 탔고,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마을을 이루면서 살게 되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이 곳의 지명 이름이 "탄금대"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이 왜군을 맞이해서 전투를 벌였던 장소"


이렇게 역사 속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탄금대는 신라시대의 "우륵"에 관한 이야기에서 나오는데요. 그다음 이야기는 바로 조선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조선시대 일본의 침공을 받은 조선에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됩니다.


왜군의 북진이 계속되자 선조는 신립장군을 충주로 파견하여, 왜군을 방어하도록 합니다. 이때 선조가 신립장군에게 내준 병력은 약 60명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신립 장군은 충주로 내려가면서 이 병력을 어떻게 불리고 불려서, 약 8천 명의 군대를 만들었다고 하지요.





"탄금대에서 벌어진 조선의 운명을 건 전투, 탄금대 전투"


이렇게, 충주로 내려가면서 병력을 불린 신립 장군은 탄금대에서 왜군을 맞이해서 조선의 운명을 건 한판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그렇게 발생한 전투가 바로 역사에서도 유명한 "탄금대 전투"인 것이지요.


전투는 임진왜란이 벌어진 해인 1592년 6월 7일에 벌어졌습니다. 신립이 이끄는 부대는 탄금대의 평야에서 진을 치고 왜군일 상대로 전투를 벌였는데요. 강을 배후에 끼고 싸우는 전투로 "배수진"을 친 것으로 잘 알려진 전투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신립의 부대가 패했던 전투"


이렇게 탄금대에서 벌어진 조선의 운명을 건 전투가 벌어졌지만, 안타깝게도 조선의 병력은 일본의 병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신립이 이끈 부대가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오합지졸의 병력이 대부분이었기에 문제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열세의 병력으로 배수진을 치고 왜군에 맞선 신립 장군은 결국, 왜군을 막아내지 못하고, 탄금대에서 남한강에 몸을 던져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신립 장군의 혼을 기리는 충혼탑"


그래서 이렇게, 탄금대에서는 충혼탑과 같은 호국 영정을 기리는 탑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의 운명을 건 전투로 이름을 알린 곳이 바로 탄금대이니, 이렇게 그에 걸맞은 조형물이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곳이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탄금대 공원을 둘러보다 보면, 숙연해지는 기분이 드는데요. 그래도 탄금대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의 경치는 제법 멋지답니다. 높은 곳에 올라서 남한강을 내려다보면서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 인물들을 떠올려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충청북도 충주시 탄금대 공원"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안길 31

전화번호 : 043-848-2246

운영시간 : 8:00 - 22:00

특징 : 역사, 우륵, 신립 장군, 탄금대 전투






소인배

Since 2008 e-mail : theuranus@tistory.com

    이미지 맵

    국내여행/충청도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