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여행] 역사탐방 '탄금대 공원' "신립장군의 혼이 깃든 곳"
충주에 있는 중원고구려비에서 다시 나와서 이번에도 역사탐방을 위한 장소로 이동을 해보게 되었다. 다음 장소는 바로 신립장군이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군을 맞이해서 배수진을 치고 전투를 벌였다는 그 곳, "탄금대"다. 사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임진왜란 당시에 신립 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일본군을 상대했다는 내용을 글로 접해볼 수 있었지만, 실제로 우리 중에서 전투를 치루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에 당시 그 상황을 가히 상상하기도 힘들 듯 하다.하지만, 그래도 이 곳을 한번 방문을 해본다면 그 떄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더 상상해볼 수 있는 그러한 모습이 그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곳이다.
"탄금대, 이름의 기원은 가야의 우륵이 가야금을 탔던 곳이라는 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곳은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군과 일전을 벌였던 신립장군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역사적인 의미가 깃든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탄금대라는 지명의 유래가 가야국의 사람이었던 "우륵"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야국에서 신라로 귀화한 우륵을 당시 신라의 왕이었던 진흥왕이 이에 기뻐하며, 우륵을 충주로 보내서 살게 했고, 우륵이 이 곳에서 터를 잡고 가야금을 타게 되면서, 그의 미묘한 소리에 의해서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곳의 지명이 탄금대라고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정말 탄금대는 역사적인 장면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을 맞이해서 배수진을 치고 전투를 벌였던 신립장군"
우륵과 관련된 이야기 외에도 이 곳은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장군, 신립장군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깃들어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순식간에 우리나라가 일본군에 의해서 함락당하기 시작하자 당시 조선의 국왕이었던 선조는 신립장군을 충주로 파견하게 된다. 하지만 나라가 위태로웠던 상황인지라, 당시 선조가 신립장군에게 내준 병사는 단 60명에 불과했다고 하는데, 내려가면서 어찌어찌 병력을 불리고 불리고 불려서 만든 병사가 약 8천명의 군사였다고 한다. 하지만 훈련이 잘 되지 않은 오합지졸의 병사들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신립은 어쩔 수 없이 일본군에 패할 수밖에 없었고, 일본군을 막아내지 못한 그는 이 곳 탄금대에서 남한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이렇게 충혼탑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신립 장군의 충혼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이 곳에서는 충혼탑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러한 모습이다. 절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나라를 위해서 싸운 신립장군과 같은 인물이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그래도 지금까지 버텨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탄금대, 남한강이 보이는 그 곳, 경치가 상당히 좋다."
잠시 역사적인 이야기를 접어두고, 현재 탄금대공원의 모습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탄금대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의 모습은 상당히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소인배닷컴의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예전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곳을 방문했던 것 같은데, 다른 블로그글을 찾아보아도 그러한 내용은 없는 것 같으니, 왠지 소인배닷컴이 다른 지방 편을 보고 착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아무튼 이 곳에서 내려다보는 남한강은 상당히 아름답다. 잔잔한 물이라서 그런지 물 속에 비친 나무들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빠르게 흐르는 물이라면 이러한 모습을 잘 볼 수 없는데 말이다. 잔잔히 흐르는 남한강을 바라보면서 나라를 위해 목슴을 바쳤던 인물을 한번 생각을 해보면서 사색에 잠시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충주, 역사탐방 탄금대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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