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여행] 역사탐방 월악산 '미륵대원지' "(구) 미륵사지"

[충주 여행] 역사탐방 월악산 '미륵대원지' "(구) 미륵사지"


[충주 여행] 역사탐방 월악산 '미륵대원지' "(구) 미륵사지"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의 일환으로 시작했던 충주여행, 그래서 그런 것인지 이번 여행 중에는 이렇게 역사와 관련이 있는 곳에 많이 방문하게 되는 듯 하다. 아무래도 예전에 소인배닷컴이 학창시절에 "수학여행" 코스로 심심치 않게 오던 곳이 바로 충주에 있는 수안보였으니, 자연스럽게 역사적인 내용을 많이 품고 있는 곳이 이 곳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곳에 방문했으니 역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곳에 방문하는 것이 당연시 될 것이고 말이다.




"역사탐방, 충주 월악산에 있는 미륵대원지"


둘째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바로 충주 월악산에 있는 미륵대원지다. 예전의 이름은 "미륵사지"였다고 하는데,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와 헷갈려서 그런 것인지, 일부러 이름을 이렇게 바꾸어 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역사 책에서 "미륵사지"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서 미륵사지라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미륵대원지라는 이름은 조금 익숙하지 않은데 말이다.



"미륵대원지는 어떤 곳일까?"


미륵대원지를 역사 속에서 찾아보면 이러하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자, 부왕의 뜻에 반하던 마의태자와 덕성공주가 망국의 한을 달랠 길이 없어 삼베옷을 입고 금강산으로 향하던 중 하늘재를 넘어오기 전에 하룻밤을 묵을 때 꿈속에서 관음보살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마의태자는 이 곳에 미륵불을 덕성공주는 바로 아래에 있는 월악산 중턱에 덕주사를 짓고 마애불을 새겼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덕주사 위에 새겨진 마애불은 남쪽방향을 바라보고, 미륵불은 북쪽방향을 보고 있어서 두 개의 불상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북쪽을 향해서 지어진 사찰은 이 곳 미륵사가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미륵사를 향해서 들어가는 길에 보이던 과수원"


미륵사를 향해서 천천히 걸어들어가다보면, 이렇게 탐스러운 사과가 열려있는 "과수원"을 맞이할 수 있다. 미륵사와는 큰 상관이 없는 곳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탐스럽게 열려있는 사과를 보니, 왠지 탐해보고 싶은 그러한 욕망이 생기기도 한다.



"과수원을 지나치고 나면, 미륵대원지를 감상할 수 있다."


그렇게 과수원을 지나치고 조금 더 걸어가다보면 미륵대원지로 들어가볼 수가 있다. 입구에는 이렇게 커다란 판에 미륵대원지의 정보가 담겨져있는데, 상당히 세련되어 보인다. 왠지 같은 곳이라도 더 멋있어 보이게 디자인을 했다고 할까?




▲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는 충주 미륵리 원터



"미륵대원지, 그 곳에는 문화재가 가득하다."


사실, 이렇게 직접 이 곳에서 문화재들을 감상할 떄는 몰랐는데, 이렇게 다녀와서 글을 쓰면서 이것저것 하나씩 살펴보게 되니, 상딩히 감회가 새롭다. 소인배닷컴이 방문해서 직접 눈으로 확인했던 것들이 이렇게 모두 하나같이 문화재와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었던 것들이니 말이다. 이 곳에서는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모습들의 문화를 하나씩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북모양의 돌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이 곳, 미륵대원지에서는 거북모양을 한 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그러한 모습이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거북 모양의 돌은 비석받침으로 사용이 되었다고 한다. 특별히 이 곳에 있는 거북돌은 우리나라 최대의 거북모양 받침이라고 하는데, 그 크기는 길이 605cm, 높이 180cm라고 한다.



옛 조상님들의 기운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은 장소, 미륵대원지, 이 곳에서는 다양한 역사적인 유물들을 찾아볼 수 있는 그러한 곳이었다. 이번 충주 여행의 컨셉과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그러한 곳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충주 월악산 미륵대원지"





소인배

Since 2008 e-mail : theuranus@tistory.com

    이미지 맵

    휴지통/오래된 여행기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