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 9 "수능시험"

타산지석 9 "수능시험"


타산지석 9 "수능시험"


결국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수능시험 날짜는 다가왔다. 대망의 2003학년도 수학능력시험, 경북대학교 옆에 있는 '대구공고'에서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시험장에 들어가면 시계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뿔싸! 시계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따로 시계를 가지고 오지도 않았는데,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대학 수학능력 시험 시작"


1교시 언어영역이 시작이 되었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맨 앞에 있는 듣기 6문제 중 2문제 정도 틀리고 시작을 해버렸다. 연습할 때도 이런 적은 거의 없었는데… 그리고, 뒤에 나오는 문제의 지문도 평소보다는 좀 더 어려운 듯 느껴졌다. 결국 시계도 없는 상황에 체감 난이도까지 더 어렵게 느껴지면서 시간 조절에 실패하면서 마지막 10문제 가량을 제대로 풀어보지도 못했다.


이후 2교시 수리탐구영역 1 시간이 시작되었다. 수학은 원래 못하는 과목이었다. 포기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도저히 따라갈 여력이 없었다. 애초에 기초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일 앞장에 있던 4문제는 풀 수 있었던 문제였는데, 이 날은 맨 앞장의 문제도 2문제 정도밖에 풀지 못했다. 아무리 못 풀어도 10번 문제 정도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하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는데, 이 날은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1,2 교시를 마치고 나면 점심시간이 찾아온다. 시험을 같이 치러간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오전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망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푸념, 한탄을 하며 식사를 마치고, 3교시 시험이 시작되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3교시 수리탐구영역 2 시간이 시작되었다. 앞서 치른 시험의 여파 때문인지 평소 2시간 시험시간 중 1시간 정도면 다 풀고 시간이 남는 수리탐구영역 2의 문제도 평소보다 잘 풀리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은 모자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30분 정도를 남기고 문제를 다 풀었는데, 정답률은 평소에 미치지 않는 상태였다.


마지막 4교시 외국어영역 시험이 시작된다. 사실, 이쯤 되니 시험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그냥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할 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듣기 평가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듣기는 원래 평소에도 잘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 날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듣기 평가가 시행되는 도중, 방송에 이상이 생겨 몇 문제를 전혀 듣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독해 지문도 잘 풀리지도 않고 모든 것이 최악인 상황이었다. 그저 시간 안에 답안지에 답을 마킹했다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시험은 종료되었고, 그렇게 실망스러운 마음만을 남긴 수학능력시험은 끝이 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끝이 난 상황이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결과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같이 시험을 치렀던 친구들과 시험장을 빠져나오는데 울컥했다. 짜증 나기도 했고, 실망스럽기도 했고, 원망스럽기도 했고, 울고 싶기도 했다.


"허무함과 결정적 실수"


미국에서 만들어진 드라마인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라는 드라마를 보면, 전쟁이 끝난 후, 상대할 적이 없어진 군인들이 어떤 상황에 직면하는 가를 잘 묘사하고 있다.


우리도 수능시험을 친 이후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다. 수능시험을 위해 달려온 12년, 수학능력시험 단 하루 만에 대적이 사라진 것이다. 목표가 사라진 상황이라 시간은 많지만, 딱히 할 일은 없는 상황,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상하게도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니, 그때까지는 그렇게 재미있던 게임이 정말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졌다. 손도 대기 싫었다. 수능이 끝난 후, 딱히 할 것도 없는 시기라 예전에 갔던 "우리넷"이라는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돈은 별로 되지 않지만 딱히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허무한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성적표가 나왔다. 예상대로 성적은 좋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실망감은 몰려왔다. 한 마디로 표현을 하자면, 인생 자체가 끝난다는 느낌이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칠 곳도 없었다.


성적이 너무 실망스러웠기에, 대학교에 원서조차 내지 않았다. 이 때는 몰랐지만, 이것이 내가 내린 결정적인 실수였다.


나와 성적이 비슷했던 한 친구는, 비록 농과대학이었지만, 경북대학교에 원서 접수를 했고, 합격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실망했었다고 해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어야 하는데, 그것이 내가 저지른 실수였다.


아마도 대부분의 막연히 열심히 공부를 한 친구들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고, 그리고 할 것이다. 전략 없이 무턱대고 열심히 한다는 것의 함정인 것이다. 추격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한 나도 열심히 한 것이지만, 원래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학생들 역시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이러한 경험을 먼저 해보았기에, 내게 '멘토링 스쿨'을 운영하는데 도움을 청해왔을 때 선뜻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답답했던 적도 많았고, 중간에 뭔가가 풀리지 않아 힘겨울 때도 혼자서 견뎌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 나를 이끌어줄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 더 나았을 것이다.


나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음 글에서 멘토링 스쿨에서 알려진 몇 가지를 붙인다.


소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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