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생의 이야기 15 "수학과 절망"
"2월 17일 목요일, 학원에서 둘째 날"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아침이다.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항상 힘들다. 평소에 일어나던 시간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요즘의 상태는 항상 약간 몽롱한 상태다. 게다가 학원은 뭔가 감옥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기에,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부터는 옆반으로 반을 옮기게 되었다. 학원에 일찍 도착하게 된 관계로, 앞자리를 무난하게 맡을 수 있었다. 정가운데 맨 앞자리, 고등학교 3학년 때, 내가 1년 동안 앉았던 자리와 똑같은 위치였다. 자습을 하고 있으니,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이 반 담임 선생님도 역시 수학선생님이시다. 하지만,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말하는 것도 가벼운 느낌이고, 속칭 말하는 '양아치'에 가까운 느낌이다.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물으신다.
"니가 옆 반에서 온 얘냐?"
"네…"
"얘기 좀 하자, 나와봐라."
선생님이 나가시고, 따라 나간다.
다짜고짜 말씀을 하신다.
"몇 살이냐?"
"28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왔냐 너?"
"…"
"수학은 좀 하냐?"
"전혀 못합니다."
한숨을 쉬신다.
"그래 이따가 이야기하자. 들어가 봐라."
"네…"
들어가서 자습을 한다. 조금 지나니, 수업이 시작된다. 국어, 영어, 수학 등의 속칭 메이저 과목은 매일 있는 듯했다. 오늘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은, 국어수업이었다. 열정이 가득한 꽤 젊으신 선생님이셨는데, 수업을 하던 중 갑자기 나를 보고 묻는다.
"저기 혹시 몇 살이십니까?"
"28입니다." 내가 대답한다.
"잠깐 일어나 보시겠습니까?"
책상에서 몸을 빼내서 일어나니, 갑자기 달려와서 나를 안는다.
"힘내십시오!"
그리고는 수업을 계속 진행한다. 수업시간 1시간 내내 열정으로 가득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담임선생님의 수학 수업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내가 다 잊어버려 생각이 나지 않는 삼각함수부터 진도를 나가는 것에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담임 선생님이 이야기를 좀 하자며 나를 부른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바라보셨다.
"대체 승찬이가 너한테 어떤 희망을 준거냐?" 담임 선생님이 말한다.
여기서 승찬이는 내가 처음에 상담을 했던 선생님이다.
"지금 와서 수능을 공부하는 건 내가 봤을 땐, 가망이 없다."
"…"
"차차리 편입시험을 다시 준비를 하는 게 더 맞지 않겠나? 난 그래 생각하는데."
"…"
"객관적으로 한번 보자, 니 올해 수능 쳐서 나올 수 있는 성적이… 언어 한 3등급 치고, 영어는 토익 900점이라고 했재? 그럼 1등급 치고, 수학 5등급쯤 나오겠나…, 나머지 화학 1, 2에서 1등급 나온다고 쳐도, 니가 갈 수 있는 학교는 계대 정도밖에 안된다."
"…"
"아니면, 방법이 하나 있지, 수학을 수리 나형을 쳐라."
"그러면 지원할 수 있는 과가 제한되어 있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아무리 봐도 지금 와서 수리 가형 치는 건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냥 경북대학교 화학과 가서, 내년에 편입하려고 하는데 어떤 거 공부해와야 되는지 물어보는 게 더 맞는 일 아니겠나?"
"…"
"그래도, 이미 결정 내린 사항이라 번복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그래… 일단 수업 시작하니까 올라가 보자."
'정말, 해봤자 가망이 없는 건가… 갑자기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
'정말 희망이 없는 건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감싼다. 공부하던 힘도 슬슬 빠진다. 집중도 잘 되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이해를 하지 못한 삼각함수에 대한 부분에 대한 자료를 좀 구하려고 교무실로 가서 진만영 선생님을 찾았다. 사실, 희망이 없다면, 미리 포기를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어차피 해봤자 안 되는 것이라면 말이다.
상담을 하고 나서, 거의 가망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담임 선생님은 없는 상황이고, 진만영 선생님에게 삼각함수 부분에 대한 자료를 좀 구해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노트북에서 자료를 검색해서 찾아서 프린트로 출력을 해주신다. 어제도 수업시간에 문제가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 진만영 선생님을 찾아와서 자료를 받아갔었다. 아무래도 수학 1, 2과목은 중학교 기초수학은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그런 자료들을 구해서 받아갔었던 것이다.
"저기, 선생님이 보셔도 제가 가망 없어 보이십니까?"
"누가 그래?"
"아까 담임 선생님이랑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거의 가망이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셔서…"
"그냥 열심히 하라고 하는 소리지.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1등급 맞자고 하는 거 아니잖아, 하는 만큼만 하는 거지."
"…"
"이 짓도 6월까지만 하면서 고생하면 되니까, 힘내라."
"네…"
다시, 교실로 돌아가서 자습을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교무실로 내려온다. 담임 선생님은 이번에도 보이지 않아서 진만영 선생님과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담임선생님인 심상호 선생님이 들어온다.
"그래 잘됐다. 안 그래도 니하고 이야기 좀 하고 싶었는데."
담임 선생님은 이번에도 내게 수리 나형을 치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하셨지만,
내가 수리 가형을 포기할 수가 없다고 하자, 이번에는 담임 선생님이 조금 누그러지시는 눈치였다.
"그래, 니가 그렇게 나오면 이제는 내가 도와줄 차례지."
"…"
"내일 하루만 더 있으면 주말이니까, 니는 다른 거 하지 말고 내일부터 해서 중학교 3학년 수학교재 구해서 주말 동안 그거 다 보고 온나. 안 그러면 내 니한테 아무것도 안 시킨다. 알았나?"
"일단 교재부터 구해야 되니까, EBS 중학교 교재 사서 그거 보고 와라. 내일은 니가 조퇴증 끊어달라고 하면 내가 끊어주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미션을 하달받고, 둘째 날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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